인디포럼2020

당신과 나의 이름

<검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까?>

김팝콘

1. 우리는 같은 곳에서 같은 옷을 입고 만난다. 우리에게는 목적이 있다. 우리들은 모였고,  모인 우리들은 우리들로 움직인다. 당신과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은 이름을 갖는다.

 

  파리에서 일어난 노란 조끼 시위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에서, 사람들은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폭력시위를 강행했다. 영화는 블랙 클래드 유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서 시작한다. 다른 이름과 삶을 가지고,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검은 후드와 마스크를 쓰며 ‘블랙 클래드 유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공유한다. 개인의 삶과 정체성은 이 자리에서 삭제된다. 같은 옷과 목적을 가진 군중. 지금 여기에서 당신은 우리의 이름으로 서있다.

  파리의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먼 이야기로 느껴지지만 실은 ‘검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까?’의 텍스트는 우리에게서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교복과 군복, 유니폼을 입는 일상에서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이 집단으로 치환되는 것.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글과 영화, 그림을 보고 배우지만, 실제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것은 나를 버리고 집단으로 편입하는 방법이다.

2.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대가 하나하나 완성되어간다.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구별되지 않는다. 역광으로 보이는 그림자, 물체와 사람의 형체가 흐트러진다.

  종합예술이 가지는 패러독스가 있다. 인간과 그의 정신에 가장 가까워지기 위해, 가장 가까운 어떤 것을 구현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하나의 영화, 연극, 전시를 만드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신을 잃어버린다. 영화, 연극, 전시를 보는 사람들은 보는 시간 동안, 극에게 자신의 삶을 빼앗긴다. 아주 짧게 프리프로덕션의 2개월과 프로덕션의 일주일, 포스트프로덕션의 한 달 동안 작업자는 작업에 시간을 바치고,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기꺼이 예술 속의 한 인간이 된다. 말하자면 ‘자신이 되기’가 아닌 ‘타인이 되기’의 시간들.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들에게 ‘나치와 화물’이라는 텍스트가 비약일까?

  당신이 빛을 등지고 서 있다면, 당신은 다가오는 빛으로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빛이 오는 방향에 당신이 서 있다면, 보고 있는 그것은 새까맣게 흐려져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빛은 어디에서나’ 오기에 (정지돈,「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모든 곳에는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들이 한데 섞여있을 것이다. 명과 암이 공존하는 곳, 봄과 보지 못함이 공존하는 곳. 혼돈의 공간이 바로 당신이 서 있는 공간이다.

3. 당신을 만나러 간다. 당신이 누구인지,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한곳에서 만날 것이다. 하나의 이름 아래서 모인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 가지의 텍스트를 만난다. 불어의 내레이션을 번역한 한/영 자막과 영화 속 관객들이 보고 있는 영사되는 화면의 자막. 겹쳐지는 텍스트들은 서로의 거울로, 보고 있는 영화의 프레임 속 보지 못하는 것들의 모습을 슬쩍 들춘다.

  명암과 흑백. 상충되는 이미지들은 서로가 있기에 존재한다. 빛과 그림자, 과거와 미래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전체주의와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개인과 집단의 이름은 반대됨에 봉사한다. “내가 이곳에 어울리기”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 도처에 산재된 빛과 어둠을 구별하고자 한다면, 어디에 서야  할까? 두 가지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보고자 하는 나에게 적확한, 어떤 자리가 있는 걸까?

“기계인 나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지가 베르토프의 말이 떠오른다. 2016년의 한국과 2019년의 프랑스, 2019년의 홍콩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과 보았던 것들, 보면서도 보지 못한 것들과 보지 못하면서도 보았던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검은 옷을 입지 않았습니까?>의 카메라는, 무대-무대에 영사되는 스크린-카메라의 눈-자막의 네 가지의 갈래로, 결과 결 사이에 그 자체로 스며든다. 무엇을 사유할 것이냐는 관객의 자리로 비워두고 있다. 무대의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영화가 감각을 안고 달려온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부디 나와 당신, 영화와 우리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이것이 영화와 극장이 주는 데드스왑의 방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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