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2020

조율없는 일상

<목요일>

김민범

  매일이 솔이다. 변주 없이 같은 음만 계속이다. 듬성듬성 살게 되는 날만 가득할 때, 한 주를 건너는 일은 멀고 지난하다. <목요일>은 보조 강사 소정과 식당 주인 명호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를 조망한다. 소정은 종이접기를 가르친다. 종이접기는 순서대로 접어내면 결과물이 생겨나지만, 소정의 일상은 그렇지 않다. 다니던 사무실에서 짐을 빼야 하고, 잡혔던 외부 강의에서는 수업도 하기 전 다른 선생님이 오게 되어 강의실에서 쫓겨난다. 명호는 형의 장례를 치르는 중이다. 며칠간 가게 문을 닫고, 형의 신변을 정리한다. 장례식장에서 그가 짧게 나누는 통화는 드문 했던 형제간의 왕래를 보여 준다. 조문객이 성기고, 통화에서는 방문 약속이 아닌 형의 부채를 변제해달라는 대답을 듣는다.

  소정과 명호의 모습이 교차로 등장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은 하나의 건물이 차지한다. 콘크리트로 골조만 올라 있는 흰 건물. 이어지는 시공으로 번잡해야 할 주변은 말끔하다. 여름날인데 주변의 나무들은 이파리 하나 없이 창백하다. 흑백의 배경은 건축물이 얼마나 오래 그 상태를 지속하고 있었는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건물 앞을 지나는 차들은 매일을 채워가고 있는데 건물은 변주 없이 그대로 멈춰있다.

  한참을 건물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이어서 명호의 차 뒷자리에 위치한다. 전면에는 건물이 보이고, 명호는 통화하고 있다. 통화 끝에 명호는 상대에게 날짜를 묻는다.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소정을 비춘다. 건물 이층에 있는 소정은 종이접기 순서를 헤아려 본다. 네 번을 접어야 하는지 다섯 번을 접어야 하는지 헷갈린다. 담뱃불을 붙인 소정은 스마트폰과 손목시계로 시간을 번갈아 확인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고 주문처럼 외운다.

  둘은 건물을 중심으로 우연히 스친다. 사방이 뚫린 건물 이층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며 종종 담배를 태운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은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타들어 가는 꽁초를 바라보게 된다. 한 개비의 시간 동안 그들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믿는 시간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사이를 가늠하게 된다. 건축물은 두 인물 각자의 일상과 시간을 조율하는 장소가 되고, 동시에 둘은 건축물이 지나고 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매개가 된다.

  카메라는 그들이 지나는 자취를 따라가면서도 인물이 이탈한 뒤에도 남아 공간을 비춘다. 소정이 엄마와의 대화를 나누던 기찻길 인근과 명호가 통화하고, 애끓는 울음을 먹던 장례식 한 켠의 계단에서 오래 머문다. 수요일, 명호는 작업실에서 형의 짐을, 소정은 사무실에서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오는 길이다. 명호와 소정 그리고 건물이 마주한다. 명호는 통화 중이고, 소정은 건물로 향하고 있다. 명호가 요일을 묻는다. 소정은 시간과 공간을 굴절해서 명호에게 도달해 질문에 수요일이라 대답한다.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다. 카메라는 시점을 바꿔가며 둘과 건축물의 모습을 담는다. 시간은 마침내 목요일에 도달하고, 번잡하게 지나는 사람과 자동차들 사이에서 건축물은 여전히 무던하다. 기약 없이 미완으로 서 있는 건물 앞을 소정과 명호가 지나간다. 셋은 앞으로도 무수히 빗겨갈 것이다. 나흘을 살았는데 여전히 평일이다.

  내일도 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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