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or 人

허지예 <졸업>

미래
2019. 06. 24
어른이 되지 않을 용기

 여기 미완의 어른이 있다. ‘해랑’은 졸업을 앞둔 프로덕션 디자인 전공자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그렇듯 해랑 역시 졸업 후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는 불분명하다. 영화는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지망생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꿈과 생활은 대개 대립항이라 꿈을 좇는 지망생도, 꿈을 저버린 사람도 각자의 모습으로 불행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영화를 흐르는 유쾌하고 환상적이기까지 한 분위기는 고집스럽기도, 생소하기도, 특별하기도 하다.

 어머니가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자 해랑은 자립을 준비해야 할 처지가 된다. 어머니께 ‘자신의 인생을 살라’던 해랑은 예기치 못한 홀로서기에 무책임하다며 화를 내고 이내 어머니의 월세 지원마저 거절한다. 집을 구하는 것이며, 월세를 대는 것이며 어느 하나 해본 적이 없지만 찬찬히 해 나가기 위해 카페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때마침 선배가 있는 영화 현장에서 일할 기회도 생긴다. 자생에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자식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과 세상을 향한 호승심은 해랑의 치기를 돋운다. 동기 ‘은아’의 같이 살자는 제안 역시 해랑에게 자신감을 심는다.

 해랑이 아르바이트와 현장 작업을 병행해가면서까지 꿈에 가까워가려 하는 반면 은아는 다른 동기들처럼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꿈은 돈을 먹고 자란다. ‘너도 이 일을 좋아하지 않냐’는 해랑의 물음에 은아는 ‘배고파도 좋을 정도는 아니’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4년동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은아의 용감한 포기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은아는 이제 꿈속에서 나와 ‘어른’으로 살겠다는 판단을 했다. 어른들의 세계는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영역이다. 해랑이 앞으로 이겨내야 할 매일의 불안을 은아 역시 이겨내야 한다. 영화는 이 용기있는 선택을 응원하려는 듯 은아의 경로변경을 비겁한 포기로 그려내지 않는다.

 타협할 만큼 세상에 길들여지지 못한 해랑과 원하지 않던 타협을 하게 된 은아.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작아지기 십상이지만 신기하게도 둘은 함께 할 미래를 그린다. 선배와 배고픔에 대해 말하던 어두운 세트장은 은아의 출현만으로 같이 사는 단꿈을 꾸는 환상적 공간이 된다. 현실에 치이는 신세지만 둘은 ‘경력은 개나 주라‘며 웃고, 나중에 잘 되면 지금의 스케치들은 ’흑역사‘라며 큭큭댄다. 그렇게 둘은 현실의 불안을 웃음으로 지워낸다.

 은아의 포기에 해랑이 더욱 불안해지는 건 당연하다. 자신도 나중에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계속 한다는 게 배고픔을 의미한다는 선배에게 천연덕스럽게 ‘난 라면 좋아한다’고 답한 건 공표라도 하지 않고서는 그만둬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주변에 앓는 소리를 하면 위로는커녕 그만두고 살 길을 찾으라 한다. ‘해 봤자 안 되니까 취업이나 하라’는 어머니의 꾸중 역시 이제 타협하고 어른답게, 사회의 규율에 맞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럴 때 ‘라면 좋아한다’는 철없는 소리는 편한 해답이다. 해랑은 ‘돈은 중요치 않다’며 자신을 속이면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꿈에 가까워 가겠다는 그녀의 용기있는 선언이다.

 선언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카페 사장님께 부탁받았던 벽화는 단가 문제로 없던 일이 된다. 그리고 해랑은 밤거리를 걷는다. 부유한다는 표현이 더 들어맞으려나. 아무리 털고 일어나려 해도 거절로 얼룩진 마음은 이전의 맷집을 회복하기 어렵다. 아득한 건물과 화려한 빛이 가득한 거리는 유독 낯설다. 밤풍경에 압도당해 자신이 콩알처럼 느껴질 때면 울음이 난다. 얼마나 많은 지망생이 이 길을 울며 지났을까. 많은 일과 수업을 병행하던 해랑은 결국 버티다 못해 어머니께 ‘라면이 그만먹고 싶다’고 전화한다. 해랑의 말처럼 하고 싶다고 계속하다가는 월세를 내지도 밥을 먹지도 못할 수 있는 꿈이 있다. 어린 날의 고집은 아닐지 자신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혼자서도 잘 살고 있음을, 나는 남들과 다름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니께 미안해지는 것은 단순히 지원을 부탁해서가 아닌, 아직도 미완인 제 모습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 종점이야!‘ 영화의 도입부, 버스에서 잠이 든 해랑은 종점까지 와 버리고 기사님은 종점을 외친다. 종점까지 와버린 이상 갈 곳이 없어도, 잠이 덜 깨도 내려야 한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되었어도 종점은 있고, 학교를 떠날 때는 야속하게 다가온다. 예술을 업으로 삼겠다는 것은 세상과 맞지 않는 퍼즐이 되겠다는 의미다. 자신을 소개할 변변한 명함도 한 장 없이 외로워하는 날이 셀 수 없을 것이다. 이 꿈은 지속가능할까.

 영화는 해랑과 은아가 같이 살 집의 벽면을 비추며 끝난다. 흑역사가 되기를 바라는, 흑역사가 될 스케치들로 가득한 벽면의 가운데에는 환하게 웃는 둘의 사진이 위치한다. 해랑이 무사히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를 타진하는 게 무의미해지는 마무리다. 해랑의 꿈은 그저 ’그게 좋다‘는 별 것 아닌 이유에서 출발했다. 더 이상 좋지 않다거나 더 좋아하는 게 생긴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다행히도 지망생레이스가 꼭 완주해야 하는 경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해랑이 앞으로도 사진 속 웃는 모습으로 ‘잘’ 살 거라고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겠다. 혹여나 레이스를 그만두더라도 그건 탈락이 아닌 다른 길을 향한 탈출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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